길 위의 짐승

애수 2021. 4. 23.

 

체력  

 

 

비밀설정

 

가족이란 뭘까. 나는 이걸 고민하다 내 머리가 별로 쓸모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 친부모는 내가 다섯살이 되던 생일날 놀이공원에다 나를 버렸다. 그 사람들은 자식 처음 키워본 티를 거기서 냈다. 다섯살 애는 생각보다 많은 걸 기억한다. 

 

어찌저찌 날 거둬간 양부모는 열여섯살 생일이 지난 한 달 뒤에 날 버렸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엔 이영찬이란 씨발놈이 있었다. 애들 돈 등쳐먹고 옆 여고 여자애들 돌려 사귀며 뒤에서 저질스런 농담을 해대는 전형적인 양아치 새끼였다. 지 앞에서 설설 기지 않는 내가 아니꼬왔는지 친부모 양부모 들먹이며 쌍으로 욕을 해대길래 주먹을 내질렀다. 나도 몇 대 얻어맞아며 개싸움을 했는데 남들 보기엔 일방적인 폭행이었단다. 그게 몇 번 반복 되었다. 그 새끼네 부모는 자기 자식이 몇 번씩이나 전치 판정을 받은지 아냐며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내 양부모는 나를 지켜주려 했지만 결국 내가 받은 건 퇴학과 소년원 처분이었다. 킥복싱 유망주는 그렇게 한순간에 인생을 말아먹었다. 운동하는 놈이 일반인을 때리면 안 된다는 스승의 말을 흘려들은 대가는 가혹했다. 그래도 양부모란 방패와 지팡이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그들은 날 파양했다. 자신들의 뒷바라지는 여기까지인 것 같단 잔인한 이야길 울면서 했다. 당황스러웠다. 나는 당신들을 욕보이지 않기 위해 분을 터뜨렸다. 내 부모니까. 당신들은 이런 내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서 날 아들로 삼은 것 아니었나? 내가 잘못 생각한거야? 혼란스러웠다. 나는 당신들에게 뭐였길래 ⋯⋯. 정말로, 가족이란 뭘까.

 

나는 초졸 신분으로 소년원에 들어갔고 영치금도 없이 이년 반을 복역했다. 그곳엔 이영찬 같은, 아니 그것보다 더한 새끼들이 득시글거렸다. 소년원의 목적이 교화라고 했나. 애초에 교화가 될 놈들이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거다. 매일매일이 끔찍했다. 양부모의 지원으로 익혔던 킥복싱 자세를 새벽마다 연습하는게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건 같은 방 놈들의 같잖은 시비거리가 되기 딱 좋았고 그걸 묵묵히 참기만 했던 내 몸엔 멍만 늘어갔다. 저 새끼들도 면회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발치에 까이고 정강이에 까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엔 더 이상 남길 멍이 없다며 놈들이 내 얼굴에 손을 대려던 날, 나는 결국 대장 되는 놈을 두들겨 팼고 우린 고스란히 독방행이 되었다. 그 후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독방에 있는 기간 동안 태수는 나는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왜 참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건지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 했다. 함께 독방에 갔던 놈들은 먼저 출소했고 그 다음으로 같은 방에 배정된 놈들 중 하나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언젠간 아무도 널 괴롭히지 않을거란 이야길 자주 해줬다. 약 반년간 만나며 그 애와 애인, 섹파 비슷한 사이가 되어 출소 후에도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애가 출소하고 난 뒤 사기와 성매매로 잡혀들어온 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연락은 없었고 만날 길도 없었다. - 태수는 아직도 간간히 그 애를 그리워하고 있다. - 독방에서 나온 후 태수에게 껄떡대던 놈들이 있었다. 가출팸 출신 소매치기, 강도 일당인데 같이 한 판 벌리자며 늘상 추파를 던졌다. 출소 날짜가 비슷해 아직까지도 연락하며 귀찮게 군다.) 

 

몇 안 되는 옷가지를 들고 이년 반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니 내 나이는 19살을 넘어갔다. 갈 곳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내가 살던 동네를 등지고 걸었다. 절대 그곳엔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처럼 걷고 또 걸었다. 무얼하고 살지도 모르겠고 뭘 할 수 있는지도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몰랐다. 돈이 없으니 잘 곳이 없었다. 잘 곳이 없으니 돈을 벌 수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굶고 노숙하다 당도한 곳이 '집'이었다. 열아홉 현태수의 경계를 한 몸에 받은 노인은 머물고 싶은만큼 머물고 가라는 말을 전했다. 또 어떤 불행이 들이닥칠지 몰라 입을 꾹 다물었지만 다 얼어버린 몸을 녹이는게 우선이었다. 연탄으로 때는 그 집 온기가 참 따뜻해서, 나는 계속 여기에 머물기로 했다.

 

잘 곳이 생겼으니 돈을 벌어야했다. 머리에 든 건 없는 일자무식한 놈이 할 수 있는 건 몸 굴리는 것 밖에 없어서 주방일이며 서빙이며 배달이며 먼지란 먼지는 다 묻혔다. 그런데 왜 하필 내 배달구역이 거기였는지, 편의점과 술집 사이에 그 건물이 있었는지. 킥복싱장. 체육관. 그게 그렇게 눈에 아른거렸다. 사람 패는 일은 다시 하지 않으리라 내심 다짐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그 다짐은 금세 사라질 것 같았다. 다시 한다 한들 그걸 뒷받침할 땡전도 몇 푼 없었다. 그치만 거기서 구한 건 청소할 인력이었으니까. 운동 선수가 아니니까.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킥복싱장 일은   만했다. 애초에 일이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는데,  좋게도 -운이 아니라 실력이긴 하다.- 관장 눈에 들었다. 장난 삼아   새끼   올라 오라  후로  글러브에   얻어터지곤 시시 때때로 선수   하자는 추파를 던졌다. 죽어도 선수는  한다 그렇게 말해도  끈질겼다. 받는 돈은 그리 많지 않고, 친하지도 않은 학생들의 허접한 주먹을 받으며 얻어터지는게 성가시긴 해도 괜찮은 직장이었다.

 

. 그건 그런거고. 내가  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 얼른 돈을 모아 여길 나가야 하는데 도통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한창 그걸 고민하고 있을 때쯤 주먹 깨나 쓴다는 형님들이 복싱장에 왔다.  형님들도   새끼   올라와보라 시비를 걸더니 로우킥을   맞고 선수   하자는 은밀한 추파를 던졌다.  봐도 깡패 새끼의 되도 않은 가오길래 단칼에 거절했더니 니가 생각하는 선수와는 다르단다. 손에 들어오는 액수부터가 틀리단다. 차오르는 경계심을 궁금증으로 억누르고 그들을 따라간게 잘못이었다. 불법 투기장.  후로  인생은    달라졌다.

 

사람    걸로 소년원에 갔었는데, 이젠 사람 여럿 요단강 문턱까지 데려다놓고 떼돈을 번다. 어떻게 해야 반응이 더  나올까. 그걸 고민하며 러시안 훅을 날린다. 통장의 돈은 이미 한가득 쌓였다.  몸의 상처도 태산같이 쌓였다. 매몰된 나의죄도, 돌이킬  없는 업보도 나날이 늘어갔다. 이딴 일을  내가 다른 업을 가질  있을리 없다. 조금이라도 성할  돈을 벌어 놔야 살아갈  있다. 조금만 . 조금만 . 

 

⋯⋯ 조금만 .

그렇게 해서 언제까지?

 

나는 삶의 목적도 없는 주제에 미래를 살고자 했고,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기요틴 위에서 내일을 꿈꿨다.  죽긴 싫지만 이유도 없다. 죽을 각오도 없으면서  링에 올라와? 정작 죽을 각오가 없는  난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 사람은 왜 살아야해?  나에겐 가족이 없어? 나는  싸우기만 하지? 하지만 그게 재미있는  어떻게 . 가만히 있어도  자꾸 나를 건들까?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지.

 

매일  못할 고민과 비밀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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